[강동완 칼럼] 목숨을 건 김정은 시대 ‘만리마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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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에서 바라 본 신의주 대형건물 건설 현장(지난 5월 촬영).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천리마, 만리마, 70일 전투, 50일 전투 등의 표현은 북한에서 인력동원을 위해 사용하는 선전선동 구호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는 이른바 <만리마 속도전>이 강조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 최대 업적으로 자랑하는 평양 려명거리 아파트는 속도전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평양(Pyongyang)과 맨해튼(Manhattan)을 합쳐 ‘평해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려명거리 아파트는 김정은의 시대어가 되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3월 17일자 노동신문은 “수소탄을 백발, 천 발 쏜 것보다도 더 위력한 대승리가 연이어 이룩된 려명거리 건설장이야말로 만리마속도 창조의 고향”이라며 치켜세웠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은 “김여정 부부장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란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 속도로 삼자”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동원체제의 전형을 보여주는 속도전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혹독한 고통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마치 북한 경제 발전의 가속화를 보여주는 듯 하지만 속도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노동력 착취다. 부족한 자재와 열악한 장비를 사람의 노동력으로 채워야 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작년 11월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에 대형 호텔, 국제 비행장 등을 세우는 ‘신의주 건설 총계획’을 지시했다. 신의주가 바라다 보이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압록강변에 서면 곳곳에 건설장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압록강철교(조중우의교) 건너편에 둥근모양의 고층건물이 유독 눈에 띤다. 단둥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여서 그런지 이 건물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대상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듯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인식에 따라 상반된다.

신의주_살림집
6일자 노동신문에 신의주에 건설 중인 대형 건물이 살림집으로 소개됐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혹자는 이 건물을 두고 북한경제가 매우 호전되고 있는 증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압록강 건너편에 우뚝 선 둥근 모양의 고층건물은 마치 신의주의 랜드마크처럼 그 위용을 자랑한다. 이 건물은 당초 카지노장이 들어서는 호텔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지난 6일자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 건물은 살림집으로 소개되었다.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호텔과 카지노를 운영하는 외화벌이 목적에서 갑자기 살림집으로 용도를 변경한 의도가 다분히 궁금해진다.

독특한 디자인의 고층건물을 보면서 분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건물이 뚝딱 지어졌으니 북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형만이 아닌 건물 속에 감추어진 실체를 꿰뚫어 봐야 한다. 타워크레인이 보이는 건물 맨 꼭대기에 위태롭게 선 사람들이 보이는지… 가느다란 외줄 하나에 목숨 걸고 속도전을 수행하는 돌격대의 아슬아슬한 숨결이 들리는지 묻고 싶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일 년 만에 그렇게 건물이 들어섰다면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력 착취가 있었는지를 새겨봐야 한다. 필자는 한 달에 한 번씩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목격한 바로는 한밤 중에도 공사장 불빛은 꺼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의주가 고향인 탈북민 신향(가명)씨는 사진으로나마 신의주의 변화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의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가혹하게 건설현장에 끌려다녔을까 하는 탄식이었다.

아울러 속도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부실공사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지난 2014년 5월, 평양에 건설 중이던 23층 아파트가 붕괴하여 많은 인명피해가 나기도 했다. 변변한 안전장치 하나 없이 건물 꼭대기에서 겨우 외줄 하나에 생명을 맡긴 북한 주민들의 위태로움이 지금의 북한의 상황을 말해 주는 듯하다.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하며 ‘인민을 위해 복무함’을 제시하지만 정권은 인민들 위에 군림한다. 한 층씩 층수가 올라갈 때마다 독재정권의 야만에 붙잡혀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북한 주민들의 절규가 쌓여가는 건 아닐는지. 그들의 절규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면 침묵의 범죄자라는 오명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고향인 수많은 신향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한 정권의 변화를 촉구하는 울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의주 건설에 동원된 북한 노동자들이 다소 위태로운 상황에서 작업하고 있다(지난 5월 촬영).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